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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컬럼] 교회교육과 기독교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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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61회 작성일 19-10-2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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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육과 기독교세계관 

Church Education and Christian Worldview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 가정은 교육의 부재에 대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문화적 성숙은 교육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모든 교육의 책임을 학교로 던져 놓은 채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의 주체가 아니다. 모든 교육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가정에 있는 부모에게 있다. 또한 그 가정들로 구성된 사회공동체가 교육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교회 역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교육의 책임이 함께 있다. 


스마트(J. Smart)는 '교육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성례가 없는 교회와 같다'고 말했다. 교회교육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교육의 문제는 언제나 우선순위(priority)에서 배제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문제는 이원론적인 사고에 의해 교회학교로 분리시키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교육은 교회학교에서 시행되는 것으로만 간주하기도 한다. 즉 교회가 교육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초대교회에서 이상적인 교회의 본질을 찾는다. 그것은 예배(선포,Kerygma)와 교육(가르치는 일, Didache), 교제(나눔, Koinoia)와 봉사(선교와 구제, Diakonia)이다. 초대교회에서 사도의 가르침에 의해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성숙해 갔던 것을 상기하면 지금의 교회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교회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교회학교(흔히 '주일학교'라 부르는)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학교는 어린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들과 조금 더 포함하면 대학 청년들의 신앙교육을 위한 '부속기관'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 또 다른 공동체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교회는 유기적인 신앙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교육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교회교육은 어떤 경우에도 교회 안에서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교육적 작업인 것이다. 이것은 성도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데 있다. 교회는 신앙을 교육하는 공동체로서의 본질적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관'이나 '학교'로 분리되는 인식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대교회 이후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함께 삶을 나누는 교육공동체로서의 모습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중세 로마교회를 거쳐 개혁교회에서 조차 교회와 교육의 분리 현상이 두드러졌다. 중세교회에서는 교회의 교육적 기능을 교회 밖, 즉 제2의 교육현장인 학교를 설립함으로 교육적 기능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었다. 중세교회는 교육을 그 중심구조로부터 이탈시켜 교리의 보조적 전달형식으로, 교회 밖의 부차적 영역으로 몰아내었다. 또한 개혁교회에서도 마틴 루터(M. Luther)의 '작은 교리문답서'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는 했으나 교육을 가정의 가장(家長)들에게 맡김으로 초대교회의 교육적 기능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결국 교회는 교육과 분리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교회는 설교와 성례전이 실시되는 예배공동체로 간주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육은 가정과 학교가 떠맡아야 한다는 이원론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교회와 교육의 분리를 생각할 때 가장 큰 유형은 주일학교의 등장에 있다. 주일학교는 교회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면서도 교회와 교육의 분리를 가져온 원인이 되기도 한다. 주일학교는 일반적으로 1780년 영국의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산업혁명을 통해 일어난 도시화, 공업화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거리로 버려졌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 공장으로 가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서 예방교육과 대중종교교육 운동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 주일학교였다. 


후에 미국으로 영향을 끼쳐 1790년 미국에서 주일학교협의회가 창설되었다. 이것은 일반 사회교육의 차원에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교회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교육'을 상실한 교회에서 그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온 것이다. 이후 '주일학교'라는 명칭은 진보주의자들에 비판에 의해서 '교회학교'로 대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명칭에 상관없이 교회교육을 '학교교육 형식'에서 이해하였던 오류를 반성하고 교육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여야만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여전히 교회와 교육의 유기적 관계를 바로 정립하지 못하고 교육적 행위를 교회의 본질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교회교육의 위기이기도 하다. 


또한 교회교육의 위기에는 교육의 원리(중심)가 되어야 할 기독교세계관의 부재에 있다. 모든 교육과정에 기초가 되어야 할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아 교육의 방향과 내용에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교회교육의 목적조차 세워지지 않은 교회가 많다.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학교에서 세워지는 1년 표어와 실천목표를 세우는 정도에 머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교육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에 의해서 세대별로 나누어지는 교육의 실제적인 목표와 방향이 세워질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교회교육의 목적과 목표 속에 나타나야 할 기독교 세계관의 틀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에서, 교회교육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바른 시각을 길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말할 때에도 영혼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교육의 원리는 죄와 구속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기독교세계관은 인간의 전 삶의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정하며,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해 나가는데 필요한 원리를 제공해 준다. 세계관의 변화 없이 삶이 변화될 수 없듯이 교회교육이 울리는 꽹과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훈련이 함께 병행되어져야 한다. 


교회교육과 기독교세계관의 문제는 함께 걸어가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의 조명없이 교회교육은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회복함으로 교육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도와야 한다. 동시에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을 놓치지 않고 교육내용에 함께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리라 본다. 이러한 교회의 교육적 과제를 위해서 교회는 교육의 전문적 기능을 인정하고 교육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교육 인력의 확보와 교육환경의 개선, 이 모든 것을 위한 재정적인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이러한 교회교육의 위치를 제 자리에 놓지 못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황성건 목사 / 본 선교회 대표, 제자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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