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컬럼] 청소년들의 친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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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51회 작성일 19-10-24 15:29본문
청소년들의 친구관계(Friendship of Youth)
사랑하는 연인끼리 종종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자기는 나를 위해서 생명을 버릴 수 있어?”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은 “나는 너를 나의 생명같이 사랑해?”라고 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은 생명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15:1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친히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으로 사랑하는 것은 희생적 사랑입니다. 목자 된 주님은 양된 우리를 늘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주님은 우리를 자기 생명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요나단의 나누었던 친구의 사랑은 주님이 우리를 “생명으로 사랑하신다.”는 표현보다는 다소 약한 어감으로 “자기 생명같이 사랑한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내 생명을 소중하게 아끼듯 남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같이 사랑한다”는 말에는 혈육과 같은 의무가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결국 법적으로 형제관계가 맺어짐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이 정도의 표현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가 이런 사랑을 하고 있다면 도전을 받을 만 합니다. 그래서 나의 생명과 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이런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던 두 사람은 깊은 우정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런 우정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에서 찾을 수 있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바른 친구 관계를 제시해봅니다.
먼저, 자기 생명과 같은 사랑은 “하나 된 마음”이라고 봅니다.(삼상18:1)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마치 쇠사슬로 굳게 묶어 놓은 것과 같이 그 사랑을 끊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마음이 서로 하나가 되었음은 서로의 생각이 깊은 내면에서 똑같아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피차 서로를 붙들어 주고 있는 상태가 됨을 말합니다. 마치 서로의 생명이 하나처럼 연결되었음을 말합니다. 요나단의 영혼이 다윗의 영혼에 연결되었음을 말합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법적으로 서로 형제가 된 것입니다. 마음으로 서로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수락했음을 의미합니다.(시133:1) 서로 하나 됨은 모든 연합의 기초입니다.
둘째, 자기 생명과 같은 사랑은 ‘조건초월’이라고 봅니다.(삼상18:4) 요나단은 형제적 의무를 다하겠다는 표현으로 다윗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품을 선물로 줍니다. 특히 왕자의 위치에 있었던 요나단이 옷을 선물로 주는 것은 최대의 선물로 여겼습니다. 에스더서6장에서 모르드개가 왕의 제복을 입었다고 나옵니다.(에6:11) 옷을 주는 것은 자기 생명같이 사랑함에 대한 진심어린 표현입니다. 이것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섭니다. 물질의 유무가 생명같이 사랑하는데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형제가 서로 사랑함에는 신분과 조건을 초월하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득권자인 요나단이 초라한 목동 다윗에게 초월적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고자 하는 초월적 관용’은 진정한 우정과 사랑의 토대가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자기 생명과 같은 사랑은 ‘책임을 지는 약속’이라고 봅니다.(삼상18:3) 요나단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자기 아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대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울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인정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습니다.(삼상20:15-16) 그리고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는 다윗과 장래까지 약속합니다. 자신의 장래와 자식, 명예까지 모두 다윗에게 부탁합니다. 사랑은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현재도, 장래도 그 집안과 자식도 사랑의 대상에 포함시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앞날의 불투명함을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지위가 바뀌고 위치가 바뀌는 날이 올지라도 생명같이 사랑함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친구관계는 어떠합니까?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던 다윗과 요나단처럼 그런 우정을 갖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친구조차 경쟁자로 여기는 학교생활에서 금품갈취, 셔틀(강제 심부름), 따돌림(네버엔딩) 등 이런 상황에서 생명처럼 아끼고 존중해주는 친구 관계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에서 당하는 신체폭력,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등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지경입니다. 심지어 사이버 집단 괴롭힘도 만연되고 있는 현실입니다.(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집단 괴롭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사이버폭력으로 인해 피해학생은 따돌림, 명예훼손, 모함, 비방 등을 당하여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 중고생 4000명을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꼴(27.7%)로 사이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교육부가 실시한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사이버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학생이 1만2490명에 달했습니다. 괴롭히는 수법도 다양합니다. 피해 학생을 카톡 대화방으로 초대해 대량의 욕설 메시지를 보내거나(일명 ‘떼카’), 피해 학생이 대화방을 나가려고 하면 끊임없이 초대함으로써 대화방에 갇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도록 하거나(‘카톡감옥’), 대화방에 피해 학생을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버리는(‘카톡방폭’) 방법으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성경적인 친구관계(우정)를 가르쳐주고, 친구의 소중함이 인생의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음을 강조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장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친구가 주는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좋은 친구들과 사귐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기초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위험은 소외의 고통일지 모릅니다. 경쟁구조의 사회에서 낙오되고 도태되어지는 사람들은 더 큰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친구관계입니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학업, 진로, 취업이 아닌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다윗과 요나단처럼 그런 우정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성건 목사 / 본 선교회 대표, 제자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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