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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컬럼] 어시스트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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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18회 작성일 19-10-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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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트가 되라(Be Assistant)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조연의 역할보다 주연(leading role)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상은 훌륭한 조연이 없는 주연은 결코 성공적인 연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는 사람이 있기까지 그에게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 준 어시스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알고 있다. 물론 마지막에 골을 넣는 그 사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주연의 찬란한 영광에 비해 조연의 역할이 얼마나 가려져 왔는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가 주연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무섭고 삭막한 세상이 되겠는가? 우주만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유지 되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조화로운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다음세대가 살아가는 현실은 물질우상과 이기주의적인 가치관에 젖기가 쉽다. 모두가 자기중심적 삶에 집착하기가 쉽다. 그래서 조그마한 일에도 실망하고 낙심하며 섭섭해 한다. 모두가 자기를 위해 있어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자신이 왕자와 공주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러한 주연의 역할만 고집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세상이 될까?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위해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많은 스텝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조명, 의상, 음악 등 무대에 필요한 수많은 조력의 역할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리고 이들의 아름다운 섬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절실히 느끼고 살았는지?  


성경에서는 주연의 역할로 보이는 모세와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함께 도우며 성공적인 조연의 사역을 했던 갈렙과 바나바와 같은 사람 역시 얼마나 위대한 삶이었던가? 이들의 도움 없이 어떻게 주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이 나라의 모든 부흥을 어찌 일선 정치인이나 경제인에 공로로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이들을 돕는 수많은 조력자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각계각층의 근로자들이 쉼 없이 조력을 역할을 감당함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주연들을 위해서 조연이 있는 것 같은 우상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획일화된 직업군을 양성해 왔다. 학교성적 순으로 학과를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는 재능도, 자신만의 꿈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전공한 것과 상관없는 입시보다 더 치열한 취업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래서 모두 다 주연의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에 앉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는 비전이라기보다는 그 자리만이 가장 훌륭한 것이고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생관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살도록 만든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가 의사가 되고, 판, 검사가 되고, 교사와 공무원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 또한 건강한 자기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함께 도울 수 있는 어시스트의 중요성을 우리는 부각시켜야 한다. 신하가 바로 서면 완악한 통치자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 이 나라의 장래가 대통령 한 사람의 몫이겠는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그렇다면 성경에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어시스트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첫째, 함께 변호할 수 있어야 한다. 박해자 사울이 회심하여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고 동역자로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울을 변호해 주고 긍지에 빠졌던 그를 건져 내었을 뿐 아니라 훗날에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동역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여기서 바나바는 바울을 시기하지 않고 그의 탁월한 능력과 믿음을 인정하고 도와  주었던 것이다. 그런 변호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어시스트가 될 수 있다.


둘째, 곤경에 처한  동역자를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중에서 도중에 귀가한 마가가 2차 전도여행에 함께 가기를 원했을 때 바울은 완강하게 반대를 했으나 바나바는 바울과 결별하면까지 마가를 격려하고 도왔다. 철부지 마가를 격려함으로 훗날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벧전5:3)이 되게 했고 또한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딤후4:11)이 되게 하고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게 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우리를 격려할 수 있는 동역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 역시 그 동역자를 격려할 수 있는 어시스트의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섬김을 다할 수 있는 낮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떠한 보상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섬길 수 있는 낮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섬김의 은혜를 가진 사람만이 어시스트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만 섬기는 그 사람만이 갖게 되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되도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시스트의 역할을 통해 도리어 주연 이상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지금 탁월한 주연보다 훌륭한 조연이 더 많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소수의 주연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조연으로 인해 아름다워 질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주연을 위해 조연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조연이 있음으로 주연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이 없는 대통령이 있을 수 없듯이 다양한 자기 역할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때 아름다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월의식과 자기교만을 배격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창조주요, 통치자요, 인도자인 것이다. 


주님이 만든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제각기 주연과 조연의 역할로 나누어 열심히 살아가야 할 뿐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4월이면 민의를 대신 할 사람을 세우는 총선이 있다. 그들이 온전한 우리의 대변자로, 주연으로 잘 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어시스트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성숙한 국민의식이 좋은 나라를 만들듯이 성숙한 크리스천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주연의 역할보다 어시스트의 역할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고 강조해야 될 때이다. 모두가 어시스트가 되기를 꺼려하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다음세대에게 가장 바르게 가르쳐야 할 가치관은 바로 어시스트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일이다.

 

-황성건 목사 / 본 선교회 대표, 제자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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