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컬럼] 교회는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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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29회 작성일 22-08-16 16:25본문
교회는 살아있는가?
Is the church alive?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온통 재난으로 가득 찼습니다. 코로나(Covid19), 전쟁, 기근, 홍수, 산불 등 각종 재해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재난을 겪으면서도 인간이 쌓아온 바벨탑의 죄악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우왕좌왕하며 제 살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국가는 국가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사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기관과 단체마다 해결책을 찾느라 아우성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아시아 한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바로 초대교회 가운데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진단입니다. 사데교회는 살아있다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죽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행위를 안다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이름도 갖고 있지만 더불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전혀 다른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비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데는 고대에는 리디아(Lydia)라고 불리던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사데의 특징은 당시 최대 금 생산지로 최고의 부를 누리며 섬유산업, 의류산업이 발달해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그런 이유로 사치와 방탕과 낭비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데교회 성도들은 경건한 신앙인의 삶을 살기보다는 겉모습에 치우쳐 형식적인 행위에만 열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부패해갔고 나중에는 흐지부지 되어서 죽어가는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사데교회는 처음에는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심지어 순교하는 성도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데교회는 처음의 그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마도 사데지역의 부유한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금화가 풍부하고 또한 무역 도시이며, 신전이 많은 도시여서 항상 축제가 있었고 유흥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그러한 세상의 화려함 속에서 성도들은 점점 나태해져서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신앙은 서서히 그 자리를 잃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사데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죽게 한 원인은 돈과 세상을 사랑함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마치 사데가 경제적인 부와 인간적인 쾌락을 끝없이 탐닉하는 죄악으로 심판의 대상이 된 상황과 비슷한 듯합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통로의 역할을 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이름뿐인 명목상의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이것은 마지막 심판의 전조현상일 수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데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그래서 사데교회가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도둑같이 이르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현재 깨어 있어서 신실하게 살지 않고 세속적인 사치와 방탕에 빠져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데교회와 다르게 칭찬을 들었던 빌라델비아교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는 사랑이라는 뜻의 ‘필리아’와 형제라는 뜻의 ‘델피아’의 합성어로 ’형제사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모든 면에서 봤을 때 신앙을 유지하기에는 좋지 못한 환경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지리적으로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주변의 여러 도시들로 통하는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사람의 왕래가 잦은 매우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거기에 직물, 피혁 공업이 발달했고 무엇보다 양질의 포도주 수출로 비교적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유함 때문에 우상숭배와 사치, 도덕적 문란이 심각한 지경에 있었습니다. 포도주가 주요 산물이어서 이 도시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주신으로 섬겼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삶이었습니다. 또 빌라델비아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 중 역사가 가장 짧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빌라델비아교회는 예수의 이름을 지켜 배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계3:8) 또한 빌라델비아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앙적인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신앙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계3:10~12)
우리는 지금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명확하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 前 옥스퍼드 대학 연구진들이 발표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았다. 사물에 붙은 이름이 연상 작용을 일으켜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냄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체다’와 ‘암내’라고 각각 적힌 두 개의 그릇에 똑같은 체다치즈를 넣고 냄새를 맡게 한 뒤 평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암내’로 표기된 체다치즈 보다 ‘체다’로 이름 붙여진 체다치즈에 대해 더 좋은 평가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완벽하게 똑같은 체다치즈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맛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이름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붙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그 능력을 이미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더 크게 비난받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와 크리스천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각나게 하고, 복음의 맛을 알게 하는 그런 삶이 요청됩니다.(롬8:19~22) 우리의 건강한 다음세대를 세워가기를 원한다면 “예수”, 실제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교회와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정말 살아 숨 쉬는 생명력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황성건 목사(본회 대표간사, 제자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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